번아웃(Burnout)은 장기간 지속된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축적되어 에너지와 의욕이 고갈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번아웃을 직업 관련 건강 문제로 분류했지만 최근 연구에서는 육아 역시 ‘풀타임 직무’에 준하는 강도와 책임감을 요구하는 활동으로 보고했습니다.
특히 영유아를 돌보는 엄마의 경우 일과 가정, 자기 관리의 균형이 깨지기 쉬워 번아웃 위험이 높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육아하는 엄마가 번아웃에 취약한 이유를 심리적, 사회적, 생리적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24시간 지속되는 돌봄 노동
육아는 정해진 근무 시간 없이 24시간 지속되는 돌봄 노동입니다. Leigh & Milgrom(2008)의 연구에 따르면 아기나 유아를 돌보는 초기 단계에서는 수면 부족이 누적되어 인지 기능 저하와 정서적 불안정이 증가했습니다.
특히 모유 수유나 야간 수유가 필요한 시기에는 깊은 수면이 부족하여 신체 회복이 어렵고, 이는 피로 누적으로 이어집니다.
또한 육아 과정에서는 단순한 신체 활동 뿐만 아니라 끊임없는 위험 관리, 문제 해결, 감정 조율이 요구됩니다. 이러한 지속적 긴장 상태는 번아웃의 핵심 요소인 만성 스트레스를 형성합니다.
2. 자기 시간의 상실과 정체성 변화
육아는 개인의 일상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꿉니다. 기존에 유지하던 취미, 휴식, 사회적 활동이 제한되며 자기 회복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워집니다.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의 보고에 따르면 양육자는 개인 시간을 확보하지 못할수록 스트레스 수준이 높고, 우울 및 불안 증상 발생률이 증가했습니다.
또한 출산과 육아 과정에서 정체성 변화가 발생합니다. ‘나’라는 개인보다 ‘엄마’라는 역할이 우선시되면서 자아 정체감의 일부가 희석되고 심리적 부담이 커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첫째 아이 출산 후 1~2년 사이에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3. 사회적 고립과 정서적 지지 부족
육아 초기에는 친구나 직장 동료와의 접촉이 줄어들고 사회적 고립감이 커집니다.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는 스트레스 완화와 정신건강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가사와 돌봄의 상당 부분이 엄마에게 집중되면 지지망이 약화되기 쉽습니다.
Oates et al.(2014)의 조사에 따르면 사회적 지지가 낮은 엄마일수록 번아웃 증상이 높게 나타났으며 이는 배우자의 지원 부족, 가족 및 친구의 도움 부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4. 완벽주의와 양육 스트레스
많은 엄마들이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낍니다. 이러한 양육 완벽주의(parental perfectionism)는 자녀 발달에 긍정적 효과를 주기보다 엄마 자신에게 과도한 심리적 부담을 줍니다.
Flett et al.(2012)은 완벽주의 성향이 높은 부모일수록 양육 스트레스와 수준 수준이 높다고 보고했습니다.
또한 육아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아이의 건강 문제, 발달 지연, 행동 문제 등)가 발생할 경우 완벽주의 성향의 부모는 더욱 큰 좌절감과 번아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5. 경제적·역할 부담의 복합적 영향
맞벌이 가정에서는 직장 업무와 육아를 병행하는 이중 부담(double burden)이 발생합니다. 반대로 전업 육아의 경우에도 경제적 의존성, 경력 단절, 사회적 평가 절하로 인한 심리적 스트레스가 커지게 됩니다. 이러한 경제적·역할 부담은 심리적 압박과 미래 불안을 심화시켜 번아웃의 위험을 높입니다.
육아하는 엄마가 번아웃에 빠지기 쉬운 이유는 단순히 체력 소모 때문이 아니라 지속적인 돌봄 노동, 자기 시간 상실, 사회적 고립, 완벽주의, 경제적 부담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개인의 의지나 노력 부족이 아니라 구조적·환경적 요인에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번아웃 예방을 위해서는 육아를 개인의 책임이 아닌 사회적 책임으로 인식하는 문화와 배우자, 가족, 지역사회 차원의 실질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또한 엄마 스스로도 자기 회복 시간을 확보하고 완벽함보다 지속 가능성을 우선시하는 양육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