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을 정리하려 해도 무엇 하나 쉽게 버릴 수 없고, 쌓아둔 물건 사이로 길 하나 겨우 나 있는 집. “언젠가는 쓸 수 있다”, “이건 버릴 수 없는 특별한 물건이다” 등의 변명으로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가 단순한 정리 부족이 아니라 심리적 고통과 기능 저하로 이어질 경우, 이를 저장강박증(Hoarding Disorder)이라고 부릅니다.
이 글에서는 저장강박증의 정의와 주요 증상, 진단 기준과 원인, 그리고 치료법까지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1. 저장강박증이란 무엇인가?
저장강박증은 과거에는 강박장애(OCD)의 하위 유형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2013년 개정된 DSM-5(미국정신의학회 진단 기준)가 발표되면서 독립된 질환으로 추가되었습니다. 저장강박증의 핵심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물건을 버리는 데 극심한 어려움을 느낌
- 버리지 못하는 물건이 과도하게 축적됨
- 물건들로 인해 생활 공간의 사용이 어려울 정도로 정리가 되지 않음
이러한 증상으로 인해 개인의 위생, 안전, 사회적 기능이 심각하게 저하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저장강박증은 단순히 게으르거나 깔끔하지 않은 성향이 아니라 강박적 사고와 불안이 동반된 심리적 장애라는 것입니다.
2. 저장강박증의 주요증상과 진단기준
저장강박증은 단순히 물건을 많이 소유하는 것과는 구별됩니다. 단순한 수집가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물건의 질서, 목적, 사용 가능성과 무관한 저장 행동입니다.
DSM-5(미국정신의학회 진단기준)의 진단 기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실용적 가치와 상관없이 거의 모든 물건을 저장
- 물건을 버릴 때 강한 불안이나 고통 경험
- 결과적으로 생활공간이 혼란스러울 정도로 물건에 점령됨
- 이러한 행동이 일상생활, 대인관계, 직업적 기능 등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함
- 이러한 상태가 다른 정신질환(예 : 강박장애, 우울증)의 결과가 아님
이러한 증상은 보통 청소년기 후반에서 성인기 초반에 시작되며,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됩니다. 많은 경우 가족 간의 갈등, 고립, 위생 문제 등 부가적인 문제가 동반됩니다.
3. 저장강박증의 심리적 기제
저장강박증은 단순한 수집 습관이나 물욕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장강박증은 다음과 같은 심리적 요소들이 핵심적으로 작용합니다.
- 애착 과잉
- 물건에 감정적 의미를 과도하게 부여하여 버리는 행위가 ‘손실’로 인식됨
- 예 : “이 물건은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마지막 연결 고리야”
- 불확실성 회피
- “나중에 필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집요하게 반복되며, 이를 해소하지 못함
- 통제감 보상
- 삶의 여러 영역에서 통제를 상실한 사람일수록 물건을 소유함으로써 안정감을 얻으려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음
- 강박 사고 및 회피
- 버림으로 인한 불쾌한 감정을 피하고자 저장을 반복함.
- 이는 강박장애와 유사한 기전을 가지고 있으며 저장강박은 따로 분류됨
4. 저장강박증과의 공존 질환
저장강박증은 단독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다음과 같은 정신질환과 공존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 우울증 : 무기력함과 자기효능감 저하가 저장 행동을 강화
- 불안장애 : 물건을 버리는 행위에 대한 과도한 불안
- 강박장애(OCD) : 사고와 행동의 경직성
-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 정리 능력 저하와 무계획성
- 발달장애(특히 자폐 스펙트럼) : 정해진 방식의 집착적 행동
5. 저장강박증의 치료 방법과 회복 가능성
저장강박증은 치료가 어려운 질환 중 하나로 알려져 있지만 다음과 같은 다양한 접근이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인지행동치료(CBT)
- 저장 행동의 기저에 있는 비합리적인 사고 패턴(“이것을 버리면 후회할 거야”)을 교정하고, 점진적 노출을 통해 버리는 연습을 시도함
- 노출 및 반응 방지법(ERP)
- 불안을 유발하는 물건을 버리는 과정에서 회피하지 않고 반응을 억제하는 방식.
- 강박장애 치료와 유사한 접근
- 가족치료
- 가족 간 갈등, 정리 방식에 대한 기대 차이, 의사소통 개선 등을 목표로 함.
- 가족의 비난보다는 이해 기반의 접근이 필수적
- 약물치료
- 항우울제(SSRI 계열)나 항불안제가 보조적으로 사용되며, 단독 효과보다는 심리치료를 병행했을 때 효과가 증대함.
저장강박증은 단순히 물건을 버리는 못하는 문제가 아니라 감정과 통제의 문제입니다. 삶이 불확실하고 불안할수록 우리는 물건에 집착하게 되고 그것을 통해 안정감을 얻으려 합니다. 그러나 그 안정은 일시적일 뿐이며, 오히려 공간과 관계를 파괴할 수 있습니다.
저장강박증은 이해와 훈련을 통해 조절이 가능하며, 적절한 치료를 통해 물건 뿐만 아니라 심리적 공간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저장강박증 환자를 질책하기보다는 그 불안의 구조를 이해하려는 시도입니다.